영어공부를 위해 편 책. AR지수라고 해서 책에 매겨지는 읽기 난이도 레벨이 있는데, 내 영단어수준이 초등 고학년 정도라 이 실력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AR지수 책을 찾다가(빨강머리 앤이나 보물섬이나 키다리 아저씨도 이보다 높은 수준이다 /비참) 아동도서상들을 수상한 책들 리스트에서 고른 책. 2013년 뉴베리 메달 수상작. 이북과 오디오북을 아마존에서 결제해서 아이패드로 읽음. 반쯤 읽을 때 번역서가 나와있을 거란 생각을 겨우 해냈지만 인터넷서점의 미리보기 분량을 보니 번역에 일말의 신뢰도 가지 않아서…(번역에 대한 불평 이하생략) 그냥 끝까지 영어로 읽었다(국내 제목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반’).
실화 기반의 이야기. 새끼 때부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가 나이먹고 귀여운 모습이 사라진 후에는 빅 탑 몰과 비디오 아케이드 건물에서 시시한 볼거리로 살고 있는 늙은 고릴라 아이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문장은 정말 쉽고(고릴라가 형이상학적 단어를 쓰면 얼마나 쓸까) 현재진행형이라 더 쉬운데 그 하나하나가 재치있다. 아이반은 비꼬는 유머를 구사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작가의 센스가 좋아 재미있을 부분을 딱 짚어준다.
처음에 책 소개를 읽었을 때는 이 빅 탑 몰에 새로 들어온 새끼코끼리 루비를 아이반이 목숨을 걸고 구출하는 대탈주극을 예상하면서 이런 스토리를 어떻게 납득가도록 결말지을 건지 궁금했는데(상식적으로 고릴라가 코끼리를 구해서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려보낸다는 건 너무 말이 안되잖아), 다 읽고 나니 전혀 이런 스토리가 아니었지만 설득력 있었고 좋은 진행과 결말이었다. 코끼리 스텔라와 영리한 떠돌이 개 밥, 청소부 조지와 그 딸 줄리아(※조지보다 얘가 더 중요함), 처음에 아이반을 데려다 구경거리로 만들었지만 나름대로 아이반을 아낀 빅 탑 몰의 오너 맥 등,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이해가 가고 그들의 인생에 관심이 갔다. 읽으면서 여러 번 울기도 했고 끝에서는 박수치는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음미했다. 어린이 책이지만 강추.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인간은 말을 낭비한다. 그들은 말을 바나나 껍질처럼 던지고서 썩도록 놔둔다.
껍질이 제일 좋은 부분이란 건 누구나 알 텐데.
하지만 한 번은 내 관리인 중 하나가 내 영역에 두고 간 책을 즐길 기회가 있었다.
흰개미 같은 맛이 났다.
분노는 값진 것이다. 실버백(은빛 등짝의 리더 고릴라)이 분노를 쓰는 건 질서를 지킬 때와 위험에 처한 자기 떼에게 경고할 때다. 아버지가 가슴을 두들길 때 그건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조심해라, 들어라,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화낸다. 그게 내 타고난 의무이기 때문이다.’
여기 내 영역에서는 지킬 이가 없다.
또 우리는 옛날 서부영화도 좋아한다. 서부영화에서는 언제나 누가 이런다. “이 마을은 우리 둘 다에게 너무 작아, 보안관.” 서부영화에서는 좋은 놈들과 나쁜 놈들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고, 언제나 좋은 놈들이 이긴다.
밥은 서부영화가 진짜 인생과 너무 다르다고 말하곤 한다.
좋아하는 부분은 엄청 많지만 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