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직장을 잡은 경위에 대해서는 이쪽 포스팅에 썼습니다. 우호적인 분위기의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신나는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저는 취직 1년 반쯤 지난 시점에서 이미 이직기회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었는데요. 그럴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난 첫 직장 포스팅의 초반에 쓴 대로, 다음에 갈 직장이 결정되지 않은 채로 이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O비자보유자인 저는 2개월 안에 취직을 못할 시 짐을 다 싸서 출국해야 합니다. 그런데 두 달 안에 다음 취직처가 나오느냐는 실력 위에 운까지 따라줘야 하는 거고 이런 인생중대사를 운에 맡길 순 없었습니다.
- 출국사태를 미리 피하고자 O비자 승인 직후부터 영주권을 준비했는데(당연한 얘기지만 영주권자가 되면 비자의 온갖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19년말에 넣은 케이스가 20년 3월에 최종적으로 거절당했거든요. 영주권 변호사가 다른 스튜디오에서도 경력이 있어야 다음에 승인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겠다고 조언해서 다른 스튜디오의 문을 두들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여 애니메이션 업계는 프리랜스 기반으로 고용이 이루어지고 해고도 이직도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직기회를 찾는 데 부담이 적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주권 미끄러진 후부터 배경디자인 관련 구인공고를 매주 체크하고, 테스트도 받고, 테스트를 겸한 단기프리랜스도 하고…그러고 있었는데요.
최근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회사 웹사이트를 거치지 않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상에서 아티스트를 찾는 리크루터/아트디렉터/쇼러너(TV쇼 총책임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아티스트를 찾아 컨택하는 창구로 쓰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티스트 찾음, 포트폴리오와 연락처를 리플로 달아주세요/디엠해주세요’라고 포스팅해서 희망자를 모아 아티스트 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적당하다 싶은 인원에게 연락하는 식인데요.
제가 팔로하고 있던 디즈니TV의 아트디렉터분이 그런 구인트윗을 하셨길래 포트폴리오와 연락처를 디엠한 것에서 이 대장정은 시작됩니다. 잉킹이 강한 코믹 스타일 배경을 좋아해서 이 애니메이션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힘차게 디엠을 보냈습니다만 물론 저답게 처음부터 삐그덕거렸으니…

테스트란? 아티스트가 해당 애니메이션에 잘 맞는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보기 위해 실제 업무를 상정한 과제를 주는 것입니다. 포트폴리오로 화력은 증명됐는데 스타일과 스토리 톤에 맞출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경우(하지만 맞출 수 있다면 채용하고 싶을 경우) 테스트를 해서 맞출 수 있나 봅니다.
배경디자인 테스트의 경우 스토리보드와 스타일 샘플(기존 배경들), 팀내에서 공유하는 포토샵브러시가 주어지고 아트디렉터가 간략한 설명을 줍니다.

제가 한 테스트들을 포스팅하고 싶지만 테스트도 NDA 대상이기 때문에 아쉽지만 접어두고, 지금은 대충 예시를 그려봤습니다. 이런 정도 퀄리티의 스토리보드를 주면서 ‘먹을 것들이 가득가득 쌓여있는 수퍼마켓 진열대를 디자인하세요. 캐릭터가 먹고 싶어하는 화면 오른쪽의 과자봉지는 다른 과자들과 유달리 다르게 디자인해 주세요.’ 라고 지시를 보내는 식입니다.
여튼 저는 테스트를 하였고…

이제까지 한 대여섯 번 한 테스트들의 결말은 탈락이거나 잡오퍼거나 둘 중의 하나였는데 테스트 결과를 손봐달라는 요청은 처음…디즈니TV의 다른 쇼에서 일하는 학교동창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도 이렇게 테스트 수정요청을 받고서 최종적으로 잡오퍼를 받았다면서, 마음에 들었는데 쪼금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해보면 채용할 수도 있다는 뜻일 거라고 하대요.
그래서 아트디렉터분의 노트에 따라 차를 수정해 보내고, 그게 어쨌든 패스가 된 건지 며칠 후에 인터뷰 스케줄을 잡게 됩니다.

아직 산전수전이 부족하여 이 정도에도 놀라고 마는 2년차 애송이는 이쯤에서 완전히 희망을 버리게 되는데…

어쨌든 포트폴리오와…테스트 결과와…진땀을 그렇게 흘리면서도 할 말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순발력??? 이 인정을??? 받아????? 받았을까??????? 여하간 이러한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거쳐(약 2달간) 새 직장에 안착하게 됩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취직한 케이스는 주위에도 그리 흔치 않아서 자세히 공유하고 싶었는데 역시 만화로 그리려니 시간이 제법 걸리는군요. 디즈니에 취직했다고 트윗한 후 팔로해 주신 약 3천 분의 의문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었길 바라봅니다.
저의 짧은 레주메가 여기서 끝나는지라 외노자라이프는 당분간 휴식이네요. 그럼 즐거운 봄날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