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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페이지에서 보이는 썸네일은 제 포트폴리오에 올려둔 몇 안되는 팬아트 중 하나인 멋진징조들 팬아트입니다. 본문에 따라서 이 팬아트가 보여주는 스킬을 말하라면 캐릭터드로잉/페인팅/라이팅이론/스토리의 톤을 캐릭터 데포르메에 적용하는 스킬…정도가 있겠네요)

이 포스팅은 미국 TV애니메이션업계에서 2년 남짓 일한 직접 경험과 보고들은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타 업계의 사정과는 다를 수 있으며, 저의 짧은 식견으로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 강조해두고…시작합니다.

일전에 한국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분께서 몇 가지 질문을 주셔서 대답드리는 중에 포트폴리오에 팬아트를 넣지 말아야 한다는 통념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팬아트를 숙제로 내지 마라, 포트폴리오에 넣지 마라,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건 모두 스스로의 디자인이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항상 들었는데, 실제로 들어와 본 업계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오늘 밤은 요리하다가 손을 데어서 다른 일도 못하니 이에 대한 제 의견을 좀 정리해 볼까 합니다.

포트폴리오란 무엇인가부터 써보자면, 제 생각에 포트폴리오는 판촉책자 같은 것입니다. 미래의 클라이언트에게 내가 판매하고자 하는 스킬들의 샘플을 보여주는 용도라는 의미에서요. 그리고 클라이언트는 무엇을 위해 아티스트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싶어하는가, 그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스킬을 갖고 있는 아티스트를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스킬을 돈을 주고 빌리기 위해서이지요.

여기서 아티스트가 판매하는 것은 포트폴리오에 있는 작품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스킬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게 포트폴리오와 온라인샵의 결정적인 차이점인데요. 포트폴리오는 스킬을 전시/판매하고 온라인샵은 완성작품을 전시/판매한다는 점입니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하면 클라이언트가 구입하는 것도 역시 스킬이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언트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고, 그걸 구현해줄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만일 포트폴리오에 있는 작품을 클라이언트가 바로 쓰길 원한다면 그건 채용이 아니라 작품판매라는 관계로 성립되겠지요.

조금 곁다리지만 꽤 전에 타임라인에 회자되었던 트윗이 하나 생각나네요. 찾아보니 벌써 2년 전인데; 제가 인용알티했던 트윗을 아래 첨부합니다.

저 트윗이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은, 보통이라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그 캐릭터디자인 스킬을 구입해서(=스킬을 가진 사람을 채용해서) 자신들의 작품을 위한 캐릭터를 디자인시키지 그 캐릭터 일러스트 자체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일러스트 자체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당면한 문제—개발중인 작품의 캐릭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비주얼화해야 하는—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니까요. 클라이언트가 작품이 아니라 스킬을 구입한다는 것은 그런 얘기입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팬아트를 가져와 볼게요. 포트폴리오에 팬아트를 넣지 말라는 건 팬아트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충족해 주지 못할 거라는 가정 하의 충고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이게 쟁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위 팬아트(아…잘 그렸다…)에서는 다양한 총기 디자인을 찾아내고 리얼한 프로포션으로 그릴 수 있는 아티스트의 스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스킬이 필요한 필름/게임/쇼가 있다면 아래 그림이 마마마 팬아트인 걸 알든 모르든 당장 연락하리라 생각합니다.

채도높고 풍부한 컬러로 시간에 따른 라이팅조건에 따라 컬러를 정하는 스킬이 필요한 곳이라면(예: 배경페인팅), 위 그림들이 동숲 팬아트란 사실이 이 아티스트에게 연락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구요.

캐릭터 드로잉+배경 드로잉+페인팅+컴포지션 스킬을 종합적으로 사용해 드라마틱한 그림을 완성할 필요가 있는 곳(예: 비즈뎁 중 키프레임)이라면 엄브렐라 아카데미 팬아트인 이 그림들을 보고 당장 아티스트 풀에 추가할 것이고요. 기존에 디자인된 캐릭터(캐스팅된 배우)를 닮게 잘 그릴 수 있다는 사실도 캐릭터디자인이 기존에 있는 곳을 위한 그림을 그릴 때 큰 플러스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포트폴리오에 팬아트를 넣어도 될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1차든 2차든 오리지날이든 팬아트든, 자신이 판매하고 싶은 스킬을 보여주기 적합한 작품이라면 다 넣으셔야지요, 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어쩌면 더 적을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포트폴리오와 팬아트의 관계에 대한 제 생각은 이 정도로 다 적은 것 같습니다! 끝으로 게임 아트디렉터인 클레어 허멜의 트윗타래를 링크 걸어둡니다. 17년에 트위터에서 #fanartgotmepaid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팬아트로도 채용될 수 있다는 경험담이 많이 공유되었는데, 이 때 허멜이 팬아트와 포트폴리오에 대해 쓴 긴 트윗타래입니다. 팬아트가 개인의 스킬을 보여줌으로써 채용으로 연결되는 자신의 사례를 담고 있으니 이 주제에 관심있으신 분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럼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