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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 타파리, 현 햇조입니다. 유학 때부터 여기선 다들 햇이라고 부르고요. 글도 오래 안 쓰니까 녹슬어서 영 단정한 글이 안 나오길래 백년씩 퇴고하고 있을 바에는 그냥 남에게 떠든다 생각하고 거친 글을 마구 써서 남기기로 했습니다.

삼십줄 만화가의 미술유학편을 마무리한 지 1년하고도 10개월, 드디어 두 번째 직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함으로써 외노자라이프편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네요. 뭐 더 일찍 시작한다 해도 누구도 저를 막지 않았겠지만 미국을 언제 뜨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입장에서 이 파트를 덥석 시작할 자신은 안 생기더라고요.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아티스트들은 보통 프로젝트에 고용된 풀타임 출퇴근 프리랜서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종료되면 바로 무직 상태가 되는데 이 부분이 외노자한테 극한체험이거든요. 다른 비자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보유한 비자는 O1B(특수재능비자)로, 이 비자 보유자는 미국 내 무직 상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면 법적으로 체류자격을 잃어 미국을 떠나야 해요. 그래서 만약 제가 첫 직장에서 짤리거나(결국 짤리진 않았음) 두 달 무직으로 있다 쓸쓸히 귀국해야 했다면(결국 무직기간은 0이었음) 이 파트를 쓰기에 영 폼이 안 나지 않겠어요.

이제 두 번째 프로젝트로 무사히 옮겼고, 여기까지 왔으니 세 번째도 어떻게든 되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외노자편에 좀 시동을 걸어볼까 하고요. 다른 해외취업자분들의 블로그 글들을 보며 제가 혼자 응원을 얻은 것처럼, 이것도 어느 분께는 응원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짤방에 대한 의무감에 머펫베이비스 팀을 떠날 때 그렸던 작별인사 그림이라도)

졸업!
학교에서 쌓은 근사한 포폴을 졸전에 뙇!
그에 힘입어 바로 대형스튜디오에 취직!
인스타그램에 어디어디에서 일 시작합니다 하고 회사로고 포스팅하기! (인기로고로는 전통의 강호 디즈니와 드림웍스, 신생강호 넷플릭스 등이 있음)
이런 게 우리 학교, 우리 학과를 졸업하는 학생이라면 대체로 꿈꾸는 전개겠지만 인생 그렇게 수월하게만 가진 않더라구요. 저는 5월에 졸업했는데 9월까지 완전 무직으로, 근근이 볼룬티어로 OPT만 유지해 미국에 간당간당히 남아있는 상태였거든요. 그 동안 온라인에 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엔트리 레벨(경력 2년 이하) 구인글에는 거의 다 넣어봤는데 다 떨어졌고요. 적어둔 걸 나중에 보니 총 19번 떨어졌더군요.

이 암흑의 넉 달 끝에 “Muppet Babies Work” 라는 제목의 이메일로 외노자워너비에게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준 것이 오드봇(Oddbot Inc.)으로,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고 제 첫 직장입니다.

a. 연락 경위
이곳에서 저를 찾아낸 경위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스튜디오의 다른 팀의 아트디렉터가 우리 학교 졸업전시회에 와서 명함들을 가져갔다가 > (제가 나중에 취직하게 되는) 머펫베이비스 팀에서 새 백그라운드 디자이너가 필요해져서 주위에 수소문하자 그걸 건네줬고 > 팀에서 추려서 몇 명에게 연락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저였던 거죠.
여기서 알 수 있는 이 업계의 특이점 중 하나는 구인은 지인네트워크 우선입니다. 이게 미국이 다 이런지 캘리만 이런지 애니업계가 유달리 이런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구인을 하려면 주위에 누구 있는지, 이 포지션에 맞는 사람 아는지 팀 내에 묻고 주위에 묻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구인공고는 그렇게 다 물어봤는데도 스타일이 맞는 사람/스케줄이 되는 사람을 못 찾았을 때 내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 이유로 인맥이 소중하고, 위의 제 경우처럼 일방적으로 아는 관계도 대체가능합니다(소셜미디어 포함).

b. 취업 프로세스
순서는 대충…인터뷰 제의메일 > 이틀 후 인터뷰 > 2주 동안 연락없음 > 정식 취직제안 옴 > 그 닷새 후 근무시작,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이 업계의 또다른 특이점은 취업은 꽤 시간운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잡오퍼가 왔는데 닷새 후부터 출근 시작해야 한다, 이건 만약 제가 스튜디오에서 차로 13분 떨어진 동네가 아니라 시카고라든가 뉴욕이라든가, 또는 해외에서 살고 있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스케줄이지요. 그런데 제작스케줄이 밀려있어서 그 날부터 반드시 시작해야 했다면 그냥 저를 제끼고 날짜 맞춰 시작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채용했을 가능성도 높거든요. 실제로 나중에 팀에 추가인력이 필요해 제가 아는 아티스트들을 팀에 소개했을 때, 3주 후에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대신 바로 다음 주부터 나올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걸 옆에서 보기도 했네요. 멀리서 스튜디오 있는 지역으로 이사해야 할 경우 한 달쯤 기다려준다는 경우는 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팀 스케줄상 그 자리를 좀 비워둬도 될 경우일 때 얘기고, 항상 그렇단 법이 없어서 운이 좀 따라줘야 합니다.
여기다 셀프반론을 하자면 1) 모든 쇼/필름이 제작스케줄이 다급한 건 아니니 시간운이 필요한가 아닌가도 운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대체불가능한 인력은 당연히 어떻게든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불가능한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업계 뉴비한테는 어렵긴 하지만요.

c. 인터뷰
한국에서도 한 적 없는 인생 첫 취업인터뷰라 엄청나게 긴장하고 job interview로 검색해 질문도 답변도 많이 준비했는데, 막상 가보니 저에 대해 물어보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게 될지를 30분쯤 소개해 주시는 게 다더라고요. 아트디렉터, 리드백그라운드디자이너, 프로덕션매니저 이렇게 세 분과 진행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물론 저는 혼자 긴장해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압박질문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참고로 업계가 업계인지라 인터뷰 의상들은 꽤 캐주얼합니다. 인터뷰하러 나오신 분들은 제 기억으론 버튼다운셔츠에 청바지, 티셔츠에 청바지, 원피스, 이렇게들 입고 나오셨던 것 같네요. 저는 아마 셔츠블라우스에 청바지에 립스틱만 바르고 나갔을 겁니다.

d. 비자문제 해결
이것도 궁금할 분이 계실지 모르니 써두자면, 외국인이고 OPT중이라고 잡오퍼 받은 직후 얘기를 했고, 솔직히 이것 때문에 오퍼를 취소하지 않을까 좀 겁나기도 했지만 다행히 개의치 않으셔서 안심했습니다. OPT(합법적으로 취업가능한 기간)중이어서 서류작업도 일사천리였고(이민국이 EAD카드를 딴 주소로 보내서 영원히 안 오고 있던 상황이었지만…혼자서 지옥을 맛보고 있었지만…나머지는 다 있어서…괜찮았습니다…) 이후 OPT 종료와 동시에 O1B비자로 갈아타서 계속 근무했습니다.

첫 회사 취직과정은 뭐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심심한 내용이네요. 다음에는 이직하게 된 계기와 이직과정에 대해서…쓸지도…개인정보가 너무 많이 드러난다 싶으면 안 쓸지도…안 쓰면 다른 거라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