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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일러스트레이션과 홍보영상에 찍힌 내 뒷모습.

이번 포스팅은 학교썰입니다. 미리 말씀드려 두자면 정말 쓸데없이 깁니다. 너무 길어서 차례도 써놔야 할 지경.

  1. 들어가기 전
  2. 아트센터의 학업강도
  3. 엔터테인먼트 아트 트랙
  4. 우리 과의 미술수업
  5. 장학금 리뷰(추천)
  6. 1년 3학기제로 초스피드 졸업하기(비추천)
  7. 일단 마무리

0. 들어가기 전

원서를 낸 곳은 여섯 군데, 그 중 칼아츠를 제외한 다섯 학교(아트센터, 오티스, SCAD, LCAD, MCAD)에 합격한 시점에서 내 마음은 일찍이 아트센터에 기울어 있었는데,

  1.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가 내가 동경하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학교 결정 당시 첫눈에 반한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는 여기: Elsa Chang / Sam Kallis / Victoria Ying / Sunmin Inn / Woonyoung Jung
  2. 30살 넘어 떠난 유학이라 최대한 빨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하여 앞길을 닦는것이 목표였기에 1년 3학기라는 아트센터의 학기구조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미국미대입시에 흥미있었던 분 말고 아트센터라는 이름을 아는 분이 과연 계실까? 나는 입시준비를 시작할 때까지 몰랐던 곳이다. 게다가 아트센터라고 검색하면 온 세상의 아트센터들(동숭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등등)이 다 나와서 유학후기 한 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정식 명칭은 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이고 줄여서 ACCD, 네이버 등지에서는 패서디나 아트센터라고 검색하면 유학원 블로그들의 소개글이 좀더 쉽게 나올 것이다. 피만 없는 의과대학이니 뭐니 하며 겁주는 문구들도 같이 딸려나올 텐데 그건 빡센 전공들(자동차디자인이나 프로덕트디자인) 얘기고, 내가 입학한 일러스트레이션과는 상대적으로 훨씬 한가롭다. 그러니까 일러스트레이션과 애들은 최소한 매일 잠을 잘 수 있다는 얘기다.

1. 아트센터의 학업강도

전에 듣자니 전미 대학 중 아트센터가 파티 없는 학교 10위권에 든다고 하던데,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이렇다. 보통 한 학기에 5시간짜리 스튜디오 과목(미술수업)을 4개, 3시간짜리 아카데믹 과목(일반수업)을 1개 듣는다(1주 수업시간 23시간). 4개 스튜디오 과목들이 각각 8시간어치 숙제를 내주고 1개 아카데믹 과목이 3시간어치 숙제를 내준다고 치면(1주 숙제시간 35시간) 도합 1주일에 58시간이 수업과 숙제로 쓰이는 셈이다. 학교가고 숙제하고 밥먹고 자면 1주일이 끝나있으니 파티를 할 만한 체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그리고 12시간어치 숙제가 나오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이게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일러스트레이션과의 일상이고, 자동차디자인이나 프로덕트디자인에선 학교에 침낭을 가져와서 먹고 자고 씻으며 사는 학생들도 흔히 보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상당시간을 할애해 ‘우리 학교가 빡세긴 하지만 그래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십시다’라고 신입생들을 설득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을 때는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학기마다 한 명쯤은 숙제에 쫓기다 탈수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졸음운전중 교통사고를 내곤 한다. 그런 친구들을 실시간으로 본 후의 나는 5학기인가에 오리엔테이션 리더로서 스피치를 하게 됐을 때 ‘제발 적당히 하고…잠을…자라…얘들아…B만 받아…’ 라고 부족한 영어로 온힘을 다해 외쳤다고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연재 두 개를 하던 때보다 훨씬 나아서 견딜 만했다. 한국대학에서 이리로 진학한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가 “헐…전 이것보다 더 힘든 게 상상이 안돼요”라는 대답을 들었으니, 보통의 학업보다는 강도가 세고 만화가의 연재스케줄보다는 가벼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의도적으로 학교를 좀 설렁설렁 다닌 편이기도 하다. 마감생활로 약해진 건강과 멘탈을 셀프로 케어해야 했기 때문에 절대로 병날 일은 하지 말자고 유학 초기부터 다짐하고,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고 아침에는 야채도 갈아서 마시고(학기말로 갈수록 못 먹게 되긴 하는데) 하루 6시간 이상 꼬박꼬박 자고(학기말에는 밤샘도 좀 해야 하긴 하는데) 숙제는 적당히 하고 벅차면 늦게 해가기도 하면서, 장학금을 유지할 수 있는 B0만 넘기면 되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적당히 보냈다(이렇게 널럴하다니 척 봐도 연재스케줄보다 나아보이지 않는가?). 어찌저찌 총점 B+로 우등졸업(with Honors)이 되긴 했으나, 여기서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이 쪽 업계에서 학점은 전혀, 절대, 요만큼도 취직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내 이력서엔 써놓지도 않았다!). 학점 순으로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포트폴리오만 좋으면 된다.

하지만 한편 열정과 체력을 불태워 매일 밤샘하며 공부했다면 더 많이 배워 더 좋은 포폴을 가지고 졸업해 더 빨리 취직했을지도 모르니 나처럼 하는 것이 왕도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건강과 학업 둘 다 잡는 것이 최고겠지만서도 선택해야 할 때는 있으니까.

2. 엔터테인먼트 아트 트랙

아트센터 일러스트레이션과는 다섯 트랙으로 나뉘는데 디자인/파인아트/모션/서피스(텍스처디자인), 그리고 내가 졸업한 엔터테인먼트 아트 트랙(통칭 EA, Entertainment Arts Track)이다.

일러스트레이션과는 학생수가 많아 (전 학생수의 1/4~1/3 정도) 다른 과들처럼 교수님들 학장님들의 다정한 케어를 받기는 힘들지만, 대신 그만큼 예산이 있는 덕인지 장학금이 좀더 후하다. 또 파운데이션 클래스(기본 미술수업 즉 인체드로잉, 퍼스펙티브 기본, 헤드와 손 그리기, 디자인입문 등)가 잘 돼있는 것도 장점.

일러스트레이션과는 첫 두 학기 동안은 공통적으로 파운데이션 클래스들을 수강하고 그 다음부터 트랙별로 나뉘어 각자 들을 것들을 듣게 되는데, 그릴 줄 아는 학생들을 입학시키긴 했지만 다시 기본부터 착실히 쌓도록 지도하는 것을 목표로 짠 교과과정인 것 같다. 이미 다 배우고 온 과목을 다시 듣는 학생들에게는 디메리트일지도 모르나, 나는 기본부터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수업을 하나하나 들어야 한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 중 엔터테인먼트 아트 트랙은 아트센터 내에서 가장 큰 일러스트레이션과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트랙이다(정확히는 모르는데 체감상 50% 정도). 아트센터는 졸업 즉시 취업이 가능한 프로페셔널을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라 이 과도 예외는 아니어서 애니메이션 및 엔터테인먼트 업계 진출을 위한 훈련코스로 8학기를 꽉 채운 교과과정을 제공하며, 개설된 지 8년인가 10년 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몰리는 인기트랙이다. 자세한 것은 학교 홈페이지의 이 메뉴에 잘 나와있다.

졸업생들은 비즈뎁, 캐릭터 디자인, 백그라운드 디자인, 백그라운드 페인팅, 레이아웃 디자인, 스토리보드 등 애니메이션의 각 파이프라인부터 게임 컨셉, VR 아트, 에디토리얼 일러스트, 아동문학 일러스트 등까지 폭넓은 분야로 진출한다. 이 링크드인 아트센터 페이지에서 졸업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대충 빨리 감잡을 수 있다.

한편 아트센터에는 엔터테인먼트 디자인과(통칭 ED, Entertainment Design)도 있어서 헷갈릴 수 있는데 이 쪽은 인원수가 훨씬 적고 교과과정도 많이 다르다. 이 쪽은 컨셉아트 트랙과 캐릭터 애니메이션 트랙으로 나뉘어 각각 20명 안팎의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컨셉아트 트랙은 게임 컨셉아트에 중점을 두고 있고, 캐릭터 애니메이션 트랙은 2015년 가을에 신설된 분과로 처음에는 3D애니메이터 양성코스처럼 시작했다가 뭔가 매해 커리큘럼이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 아트센터를 알아볼 때는 ‘잘 그리게 되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리얼한 화풍을 추구하는 ED 쪽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합격생들의 장학금 액수가 일러스트레이션 쪽보다 훨씬 적은 걸 보고 재빠르게 포기했다. 다만 캐릭터 애니메이션 트랙은 신설인 만큼 후한 장학금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모으려고 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있으시면 더 알아보자! (나는 2015년 여름학기에 입학해서 기회가 없었다)

3. 우리 과의 미술수업

그렇게 고대했던 미국의 미술수업은 한국에 비해 어떻게 달랐는가…를 답하기엔 나는 한국 대학 미술수업을 들어본 일이 없어서 비교를 하기 힘드니 그냥 어땠나만 설명해 보겠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또 한 얘기가 ‘우리는 학생들의 숙제를 찢거나 던져버리지 않습니다’ 였는데,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건 실제로 그랬을 확률이 농후한 거 아닌가?! 나중에 듣자하니 디자인입문 수업이나 그래픽디자인 전공수업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인 것 같고, 내가 있는 수업들에선 한 번도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교수들은 대부분 취향을 밀어붙이기보다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디자인 기본에 충실하게 숙제를 크리틱했고(취향을 밀어붙인 교수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인간 본능이니 어쩔 수 없지) 대체로 학생들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 주셨다.

그럼 이걸 어떻게 소개하면 좋으려나…내가 수강했던 과목들과 숙제들을 쭉 나열하는 게 제일 빠를지도 모르겠다.

1학기

  • 컴포지션 앤 드로잉: 피겨드로잉 수업. 파이널 과제는 신화를 테마로 한 드로잉.
  • 디자인 1: 디자인 입문. 파이널 과제는 한 학기 동안 배운 디자인 이론들을 책 한 권을 디자인해 정리하기. 디자인테마도 정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한 테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영국 ITV 드라마판 12시즌 3편, 좋은 에피소드입니다…덕후덕후 운다)였다. 딸리는 영어로 노트를 받아적고 그걸 다시 작문해 책을 만들어야 해서 엄청 힘든 과목이었다.
  • 헤드 앤 핸즈: 한 학기 내내 헤드(얼굴에 뒤통수와 목, 어깨까지 묶어서 배움)와 손을 그리는 수업. 교수에 따라 교수법이 다르다. 이 과목은 파이널과제를 미완성 레벨로 제출하는 바람에(그래서 스캔이 없음) 내 성적표에 유일하게 C+를 남긴 불명예스러운 과목이지만, 나중에 이 과목 조교를 뛰어서 (나 혼자) 명예를 회복했다. 파이널과제는 헤드 2개와 손 4개를 포함하여 무서워하는 모습의 캐릭터들을 연필소묘.
  • 퍼스펙티브: 이것도 교수에 따라 교수법이 다른데 내가 배운 교수님은 모든 퍼스를 계산하여 정확히 그리는 법을 가르치셨고, 70% 이상이 이론수업인 이 수업은 가엾은 예체능 학생들을 잔인하게 넉다운시켰다. 파이널과제는 3점소실로 한 장면 그리기.
  • 일러스트레이션 나우: 이 수업은 그냥 강당에 5시간 동안 앉아서 일러스트레이션과 트랙 소개와 졸업생들의 스피치를 들으면 되는 수업이었지만, 졸면 F라서 과제에 찌들어 24시간 수면이 부족한 신입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 ESL 베이식/아카데믹: 기본영어수업. 내 영어가 딸려서 최저레벨 영어클래스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고백해 둔다…

2학기

  • 컴포지션 앤 페인팅: 교수에 따라 다른데 나는 아크릴화 수업을 들었다(나중에는 다른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이 수업의 유화 조교를 했다). 파이널과제는 없고 1-2주당 페인팅 하나를 완성.
  • 디자인 2: 디자인 입문 두 번째. 파이널 과제는 세계의 명절을 테마로 하여 3D 오브젝트 만들기. 내 과제는 멕시코의 망자의 날 테마였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 비스콤 1: 퍼스펙티브를 응용하여 실제로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수업. 파이널 과제는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응용한 작품들을 책으로 묶어 제출.
  • 트래디셔널 애니메이션: 2학기에 들어야 할 다른 과목들이 먼저 차서(저만한 학비를 내는데도…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다…) 차선책으로 들은 ED 과목. 라이트박스와 연필로 애니메이팅을 배우는 수업. 파이널 과제는 밀가루푸대 애니메이팅. 애니메이팅은 내 길이 아닌 것을 뼈아프게 배운 과목이었다.
  • ESL/아카데믹: 기본영어수업 레벨2.
  • 2학기는 이 블로그에 더 자세한 수강후기도 있다(이거 한 번 쓰고 그 후에는 넉다운돼서 못 썼다).

3학기

  • 디지털 라이프: 포토샵으로 모델을 보며 피겨페인팅. 하지만 미드텀/파이널과제는 피겨페인팅과 전혀 관계없는 자유작. 이 수업에서 그린 미드텀/파이널은 이후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의 기반이 되어주어서 졸업 후까지 주구장창 울궈먹었다.
  • 다이내믹 스케칭: 컨스트럭티브 드로잉(보이는 대로 정확히 그리는 것보다 대상의 구조를 이해해 종이 위에 재구성하는 것) 위주의 펜과 잉크 드로잉 수업. 14주 중 8~9번쯤을 박물관, 식물원 등 현장에서 진행한다. 파이널 과제는 한 학기 동안의 드로잉과 개인프로젝트를 책 한 권에 몰아넣어 디자인하기.
  • 인벤티브 드로잉: 인체드로잉 수업인데, 다이내믹 스케칭과 같은 맥락으로 인체구조를 이해, 간략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수님이 인스타그램을 정말 부지런히 하셔서 교수님 계정에서 수업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악명높은 미드텀과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300개 헤드 카피하기. 아래 이미지는 마지막 수업시간에 그린 것.
  • 마테리얼: 실제 과목명은 더 길지만 어쨌든, 학교 모델샵의 각종 장비(테이블커터, 테이블 톱, 드릴과 서클드릴, 레이저커팅머신, 블로워 등등…)를 안전하게 사용하면서 원하는 3D를 만드는 법의 가닥을 잡는 수업. 사진은 미드텀 과제.
  • 라이팅 인텐시브/아카데믹: 기본영어수업 두 개를 거쳐 겨우 보통 학생들이 듣는 영어과목으로 올라왔다…

3.5학기

  • 스케칭 포 일러스트레이션: 아크릴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회화수업. 페인팅도 잘 해야 하지만 페인팅을 깔끔하게 포장하고 멋지게 프레젠테이션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파이널 과제는 ‘사소한 범죄’를 테마로 한 아크릴페인팅. 내가 택한 건 청소년흡연.
  • 모더니즘/아카데믹: 모더니즘 강의. 파이널이 그룹토론이어서 정말 힘들었다(영어…!!).

4학기

  • 크리에이티브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고급반. 광고나 TV쇼 업계에서 셋디자인을 하시는 교수님이 최대한 빠르고 러프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확하게 퍼스를 잡는 법을 가르치신다. 파이널 과제는 수업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
  • 디지털 랜드스케이프: 과슈페인팅 필드트립 수업. 그런데 제목명에 왜 디지털이 들어가느냐면 과슈페인팅을 스캔해서 디지털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수업은 한 번에 7시간으로, 물감과 물통을 들고 나가서 주구장창 페인팅을 한다. 수업 내내 LA식물원과 데스칸소 가든 등 식물이 가득한 곳만 나가지만 파이널 과제는 아키텍처 페인팅(퍼스펙티브가 너무 나가서 나중에 졸전 때 고통스러워하며 수정함…).
  • 익스프레시브 타입: 타이포 입문. 교수님은 뉴욕타임즈 로고를 위시한 각종 로고를 만드신 분. 내내 연필과 트레이싱페이퍼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정확하게 글씨를 그리는 법을 배운다. 파이널 과제는…좀 기억이 안 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인가 아티스트의 로고를 만드는 것…이었나?
  • 비주얼 매스: 아카데믹 수업.

5학기

  • 이미지 앤 아이디어: 교수에 따라 교수방법이 다르다. 내가 들은 교수님은 파인아트/에디토리얼 계열의 분으로, 내게 엔터테인먼트 트랙에서 그리는 대로 그리지 않는 것을 이 수업의 목표로 삼아보라고 첫 시간에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업계를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지만 사고 확장 면에서는 재미있었다. 사진은 과제 중 하나였던 멸종동물퍼즐.
  • 스케칭 포 엔터테인먼트: 기본 드로잉에서부터 레이아웃과 컴포지션까지를 연필로 커버하는 수업. 역시 같은 교수님 계정에서 수업의 일부를 볼 수 있고, 이 수업에서 시킨 흑백 필름스터디(영화 장면을 흑백으로 카피하되 두꺼운 마커와 화이트펜만 사용하고 1장면당 10분을 넘지 않도록 함)는 이후에 굉장히 도움이 됐다. 파이널 과제는 한 학기 내내 그린 그림들을 업계에 바로 들고 나갈 수 있는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정리하기.
  • 스토리보딩-키프레임-컨셉: 이것도 ED 과목인데 다른 일러스트레이션 과목 하나를 포기하고 들었다. 교수님이 내주시는 약 20개의 무대세팅 중 하나를 골라 스토리를 정하고 캐릭터디자인, 배경, 스토리보드까지를 전부 해보는 수업. 사실 5학기에 하기엔 좀 일렀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파이널과제는 한 것 전부를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정리하기.
  • 내러티브 스트럭처, 아티스틱 마테리얼: 아카데믹 수업.

6학기

  • 스타일: 기존 애니메이션들의 스타일을 빌려 작품을 완성하는 수업. 실제 업계에서는 쇼의 스타일에 맞추어 그리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매우 현실적인 수업이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쇼의 스타일이 주어져도 자기 취향과 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는 수업이기도 하다). 파이널 과제는 한 학기 동안 작업한 3개 스타일의 작품을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정리하기.
  • 컴포지션 포 필름: 컴포지션에 대한 이론적 정리. 정말 많이 배워서 오히려 정리하기가 힘든데…파이널도 별도로 없었어서 과제들을 다다닥 붙여본다.
  • 그래픽디자인 포 엔터테인먼트: 이제까지 배운 것을 총동원해 4개 작품을 만드는 수업. 과목명이 그래픽디자인이라 플랫한 스타일로 작업하려고 엄청 애썼고(※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게 내가 꽤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했다.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보면 어떤 것을 지향하는 과목인지 대충 감이 온다. 아트센터 졸업생의 포트폴리오에 리큐르스토어(술집) 페인팅이 있으면 백퍼센트 이 수업에서 한 숙제다.
  • 포토샵 펀더맨틀: 포토샵 사용법을 배우는 수업…이라고 하면 시시하게 들릴 텐데, 실제 업계에서 계속 파일을 수정하고 공유할 전제로 하여 레이어를 정리, 사용하는 법은 1개 펜선 레이어와 2-3개 컬러레이어만 쓰던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도 직장에서 매일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기엔 위에 적은 3개 과목으로 이미 내 뇌용량이 가득차서 이 과목은 거의 출석만 하고 과제도 반쯤 못했다. 패스한 게 기적;
  • 히스토리 오브 아트 2/스크린라이팅: 아카데믹 수업.

7학기

  • 프로덕션 디자인 컨셉: 졸업을 준비하며 최종적으로 자기 프로젝트를 가다듬는 수업. 나는 이 학기에 모든 에너지가 다해서 이 수업에서 딱 2작품밖에 못해 선생님의 어리둥절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 포트폴리오 디자인 랩: 졸업학기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수업으로, 졸업 포트폴리오와 졸업전시를 준비한다. 최종적인 졸업전시 장면은 이랬다.
  • IP 로우: 아카데믹 수업.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과목과 교수 선택에서 나온 개인의 경험으로서 다른 학생들의 경험은 많이 다를 수 있음을 적어둔다. 일러스트레이션과에서 올해부터 졸업생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니 여기서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 홈페이지나 텀블러, 인스타그램을 쭉 훑어보는 것도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 과목명+교수명으로 구글하면 어지간한 수업들은 누군가가 숙제를 올려뒀을 것이다. 나는 이 선배의 텀블러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다.

4. 장학금 리뷰(추천)

여러 학교 중 아트센터를 선택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이 추가 장학금 기회 때문인데, 우리 학교에서는 매 학기 장학금 리뷰에 참가해 장학금을 더 받을 수가 있다. 한 번에 1천~2천달러 정도를 올릴 수 있고 엄격하게 점수로만 판정하기에 유학생에게도 공평한 기회다.

앞에서 과목 소개들을 할 때 파이널 과제가 ‘책을 만든다’인 과목들이 이상하게 많다고 느끼지 않으셨는지? 아트센터는 프레젠테이션, 그러니까 자기 작품을 멋지게 전시하는 것을 작품의 퀄리티만큼 중시하는 학교다. 그것을 엄격하게 훈련하는 방법이 책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장학금 리뷰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매 학기 책을…만들어야 장학금을 더 받을까말까…하다는 것이다(학기가 올라가면 벽 전시도 할 수 있다! 벽은 출력비와 못박기와 페인트칠 때문에 더 빡세다!)

나는 재학중 4번 도전해 3번 성공해서 각각 장학금을 $1000(15년 8월), $1000(16년 8월), $1500 (17년 12월) 올릴 수 있었는데, 매 학기 도전했으면 좋았겠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당시엔 아마 과제에 죽어나가서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도박에 걸 짬이 없었을 것이다…지금도 아쉬워하는 부분으로, 후배들에게는 꼭 매 학기 도전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5. 1년 3학기제로 초스피드 졸업하기(비추천)

아트센터는 1년 3학기인 트라이메스터 제도라고 앞서 말했다. 1년 52주 동안 14주 학기-3주 방학-14주 학기-3주 방학-14주 학기-4주 방학을 매년 되풀이하는 식이다. 한편 엔터테인먼트 트랙의 졸업학점은 120학점, 나는 그 중 21학점을 한국 대학에서 이수한 걸로 인정받아 99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학기에 15학점(앞에서 말한 대로 스튜디오 클래스 4개+아카데믹 클래스 1개)을 들으면 6학기+9학점짜리 라이트텀 1번=2년 4개월 안에 졸업할 수 있는 셈이다. 어디까지나 계산상으로는 그렇다.

여기서 설명을 잠깐 하고 지나가자면

  • 풀텀: 1학기 학비(2019년 봄학기 기준 $21,408…다시 봐도 미친 금액이군. 내가 입학할 때는 아직 2만달러 벽을 넘지 않았었다…여하간 학비 얘기는 나중에 한 번 더 하겠다…)를 전부 내야 하는 학기. 이론적으로는 4과목 이상 몇 과목을 듣든 똑같은 학비를 내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학비를 절약하려고 7과목을 듣다가 학기중에 도저히 수업내용 소화가 불가능해 분한 울음을 터뜨린 학생을 본 적이 있어서 추천하진 않는다.
  • 라이트텀: 듣는 학점만큼만 내면 되는 학기. 1학점당 1천7백 정도, 3학점(=1과목)에 5천달러 근방일 텐데 학교 홈페이지엔 안 나와있다; 아마 학생 포털사이트에는 나와있을 듯.
  • 텀오프: 휴학.
  • 유학생들은 라이트텀/텀오프 합쳐 두 번 사용 가능하다. 그러니까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비절약의 기회는 2번뿐. 단 본국에 돌아간다는 조건으로 1년 단위 휴학은 가능(이 동안은 학생비자가 유지가 안되어서 미국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뜻).
  • 마지막 학기는 반드시 졸업한다는 조건만 지키면 2번의 기회를 이미 썼더라도 라이트텀이 가능하다.

그래서 왜 6풀텀+1라이트텀을 하지 못했는가…하면, 우선 내가 인정받은 21학점의 대부분이 아카데믹 수업이라서 한 학기 15학점을 들을 시 5개의 스튜디오 클래스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냥 불가능했다. 5개 스튜디오 = 1주 25시간 수업+1주 40시간 숙제 = 1주 65시간 근무체제를 버틸 자신은 없었고, 5개 수업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을 제대로 내 실력으로 소화하기엔 14주는 너무 부족했다. 한 학기라면 미친 척하고 달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14주를 이렇게 불태우며 보내면 깎여나간 체력이 3주 휴식으로는 풀충전되지 않는다는 게 또다른 큰 문제였다. 쌩쌩한 20대 초반 친구들은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30대 초중반…배터리…노화…완충불가…

하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학교에 다닐 시간은 없었는데 학교가 있는 LA등지의 생활비 때문이었다. 학비만도 버거운데 졸업을 늦추느라 이곳의 높은 생활비를 몇 달치 더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다(그걸 알면서 왜 LA의 학교를 택했느냐 하면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대부분이 이 근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목표는 애니메이션 업계 진출! 취직!! 이니까). 그렇다고 대충 급히 졸업해서 포트폴리오가 허술하면 취직은 언감생심 바로 귀국해야 하니 그거야말로 절대 안되는 루트라, 나름대로 시간과 돈과 체력과 포트폴리오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머리를 싸쥐고 고민한 끝에 5풀텀과 라이트텀 1번, 텀오프 1번, 졸업 마지막 찬스 라이트텀 1번으로 졸업했다. 2015년 여름학기 입학동기 중 가장 빨리 졸업했던가 두 번째였던가 그랬을 거다.

1학기 풀텀 5과목, 2학기 풀텀 5과목, 3학기 풀텀 5과목, 3.5학기 라이트텀 2과목, 4학기 풀텀 5과목, 5학기 풀텀 5과목, 6학기 풀텀 6과목, 6.5학기 텀오프, 7학기 라이트텀, 이런 스케줄로 3년을 채워 15년 5월에 입학하고 18년 4월에 졸업했다. 이 중 진짜 지옥은 1학기와 6학기였는데, 1학기는 첫 타지생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접촉사고, 지각, 숙제 잘못 알아들어서 이상한 숙제 해가기, 맥도날드에서 주문 잘못해서 버거세트 하나를 버거 3개 콜라 2개 사이드 2개로 만드는 마법 부리기 등등)를 저지르고 집주인이 집을 판다며 방을 빼달라고 해서 새 집도 찾고 이사도 하는 와중에 여섯 과목의 숙제를 어떻게든 해야 해서였고, 6학기는 막판에 돈이 떨어져서 학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6과목을 몰아듣느라 쓰러질 뻔해서다.

돈과 시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면 한 4학기나 5학기쯤에 1년 휴학을 하고 개인작을 하며 이제까지 배운 것을 철저히 복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실제로 1년 휴학과 복습이 주는 장점은 크고, 휴학중에 작업한 포트폴리오로 졸업을 건너뛰고 바로 취직한 선배들도 여럿 있다. 만약 나와 같은 과, 같은 트랙을 지망하는 분이 이걸 읽으신다면 이 점을 감안해 스케줄을 준비하시고 예산도 빡세게 계획하시길 추천하겠다.

6. 일단 마무리

이 학교소개편이 너무 길어서 그냥 버전2에서는 짧게 편집하거나 삭제할까 하다가, 아트센터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분께서 도움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셔서(감사합니다) 혹시 또 누가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고 문장만 조금씩 매끄럽게 고쳐 다시 업로드한다. 마지막으로 아트센터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 동문 그래픽디자인과 선배님의 유학생활 포스팅들을 봐주셨으면 한다. 아트센터에서의 생활이 (그림첨부로!) 잘 정리되어 있다.

아트센터를 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 학교에서의 그림에 대한 접근법은 내가 배우고 싶던 그대로였고, 면학분위기도 좋았고(달리 말하면 전체적으로 숙제에 찌들어있었단 소리임) 운좋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업계뉴비들로서 서로 도우며 이 바닥을 헤쳐나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학교에 갔다면 어떤 다른 경험을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트센터에서 얻은 경험에 만족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고민이다. 버전1에서는 이 다음부터의 포스팅들이 좀 토막난 짧은 주제들의 모듬이었는데 그보다 좀더 깔끔하게 다듬고 싶다…음…취업 얘기를 해볼까, 유학에 대한 졸업생으로서의 감상을 좀더 써볼까, 그냥 토막주제들대로 몰아서 써볼까…그래도 뭘 쓰든 이 포스팅만큼 길게 쓰진 않을 거다. 이미 이 포스팅은 1만7천 자를 넘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