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알함브라에 있는 팝컬처 전문 갤러리인 누클레우스가 매년 개최하는 Power In Numbers라는 전시회가 있다. 5인치*7인치짜리 수작업만 제출하여 장당 $100에 판매하는 이벤트성 전시회인데, 2021년에 한 번 참가해 보고 싶다고 생각을…생각만…하다가 마감이 닥쳐와서 트위터에서 5시간쯤 실시간중계하며 달렸다. 목표는 아래 왼쪽 사진 구석의 작은 그림(18년작)을 오른쪽의 6등신쯤 되는 아니메스타일 페인팅으로 리메이크하기.


아래 반투명으로 깔려있는 건 왼쪽 그림을 보고 이런 느낌으로 하자고 생각하며 구체화한 컬러러프. 이 정도 이미지까지 나와 있으면 완성은 상당히 눈앞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종이에 바로 옮기지 않고 컴퓨터로 기획하며 디자인을 가다듬는 시간. 밝은 자주색의 모양을 마음에 들 때까지 쪼개고 합치며 재조립한 모습이 가운데 이미지. 이 때의 포인트는 자주색을 머리에 넣는 광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화면을 보기좋은 구도로 만들기 위한 자주색 도형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레이어를 나눠 각 색면적의 가장자리를 딴 시점에서 3시간 40분 남았다…!



출력사이즈가 왜인지 계속 틀려서 하세월 걸려 겨우 맞춰 붙여놨는데 다음 난관: 가장 밝은색으로 점찍어둔 밝은 노란색 포스카 마커가 말라서 안 나옴 ㅋㅌㅋㅋㅋ…제일 넓은 면적을 과슈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믹스미디어가 되고 마는데! 회색 내수성잉크(누들러스 그레이)로 선을 따며(세 번째 이미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한다. 아크릴마커에 묻힐 선이라 색 구획이 보일 정도로만 느슨하게 따면 됨.



출력한 밑그림에다가 라이트박스와 잉크로 선을 따다가 포기. 마커칠을 해야 하는 종이가 두꺼워서 밑그림이 안 보인다! 거의 상상으로 그리는 수준. 재빨리 때려치우고 고전적 방법인 수제먹지 – 두터운 연필칠을 한 다음 고대로 볼펜으로 따라그려서 아래 종이에 트레이싱 – 를 실행한 모습이 위 이미지들. 평소에 먹지를 구비해두면 이런 삽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무사히 밑그림 먹지질을 완료하고 과슈로 밑칠을 했다. 너무 급해서 책상에 굴러다니던 ssd 껍데기를 팔레트로 씀 ㅋ ㅌㅌㅋㅌ 이제부터는 그냥 겹치는 색끼리 서로서로 덮어가는 각축장 마감 50분 전!




그림은 어느 시점부터는 육체노동이다. 이야 등 아팠다…

무사히 접수, 심사를 통과해 전시회에 올랐고, 판매되었다고 전해들었지만 어느 분이 사가셨는진 모른다. 마음에 드시길!